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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조선 중기 청주양씨 선조를 제향하는 사당.

기자명 양해석

[스타트뉴스]=[개설]= 충헌사는 충헌공(忠憲公) 양기(楊起)를 주향으로 하고, 양치·양희지·양응춘·양훤 등을 제향하고 있는 사당이다. 양기의 본관은 청주, 호는 암곡, 시호는 충헌이다. 양치는 양기의 증손으로 호는 퇴은(退隱)이다. 세종 때 김종서를 도와 육진을 개척하고 두만강을 국경선으로 확장하는 데 기여하였으며 황해도·함길도병마사를 지냈다.

▲충헌사 자료사진
양희지는 양기의 8세손으로 호는 대봉(大峯)이다. 연산군 때 호당대사헌을 지냈다. 양응춘은 양기의 13세손으로 호는 도곡(道谷)이다. 회덕현감 재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조헌을 따라 금산 싸움에서 전사, 이조참의에 추증되었다. 양훤은 양기의 14세손으로 호는 어촌(漁村)이다. 광해군 때 폐비사건이 일어나자 낙향하여 학문을 닦았다.
[위치]

상월면사무소에서 국도 23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1.5㎞ 가면 도로 동쪽에 노성천 가는 길이 있고, 이 길로 800m 지점에 주곡리 입구가 있는데, 여기서 700m 들어가면 충헌사가 자리 잡고 있다.

충헌사는 건립 시기가 1626년이라 되어 있는데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계속 사우가 존재하였는지는 의문이다. 조선조 서원, 사우는 16~17세기부터 시작해 18~19세기에 전성기를 맞다가 흥선대원군 때 일제히 철퇴를 맞았기 때문이다. 충헌사가 17세기부터 제대로 된 사우의 형태를 갖추고 존립하였다면 『조두록(俎豆錄)』이나 『열읍원우사적(列邑院宇事蹟)』,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등 원사(院祠) 전문 사료에 실려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아마도 대부분의 문중 사우가 그렇듯이 충헌사도 논산 지역에 영향력을 가진 사우라기보다는 가묘 등의 형태로 존재해 오다 근래 들어 사우로 탈바꿈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형태] ▼

충헌사는 삼문과 사우로 이루어져 있으며, 솟을대문 형태의 삼문에는 경례문(敬禮門)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사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바닥을 한 단 높게 조성한 후 낮은 초석에 둥근 기둥을 세우고 맞배지붕을 올렸으며, 방풍판 시설이 되어 있다. 충헌사 주변은 낮은 담이 두르고 있으며 담은 고택과 연결되어 고택의 후원에 사우가 이어져 있는 형태이다. 고택의 사랑채 앞면에는 경모당(敬慕堂)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현황] ▼

충헌사는 제향 인물의 면면으로 보아 청주양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92년 논산시에서 향토유적 제14호로 지정하였다.

[의의와 평가]

충헌사는 17세기부터 사우의 연원을 두고 있으나 실제 300여 년 전의 건물은 아닌 것으로 보이며, 후대 들어 청주양씨 가문에서 자파의 선조를 모신 사우로 발전시킨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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