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스타트뉴스 이철휘 기자] 조향옥 시인은 올해로 문단에 데뷔한지 꼭 10년이 된다.
2016년 첫 시집 ‘훔친달’을 펴내고 만 5년 만에 두 번째 시집 ‘남강의 시간‘(애지)을 출간했다.
그러니까 만 5년을 주기로 산고 끝에 건져 올린 잠언 같은 시집을 한 권씩 세상에 선보인 셈이다.
이번 시집은 삶과 고통의 깊은 통찰과 사물과의 감정이입을 통해 자신의 참모습을 찾고 깨달은 지혜로운 샘과 같다.
조향옥 시인의 시집 ’남강의 시간‘은 시적 대상을 향해 도발적이고 비약적인 상상력을 과시한다.
특히, 조 시인의 품에 일단 안기면 딱딱해진 시어들이 물렁물렁해져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
딱딱하게 굳어 있는 시각적 감각이 어느새 물렁물렁해져 감정의 세포를 숨 쉬게 한다.
시집 ’남강의 시간‘에 수록된 몇 편에 짧은 시편들을 보면 한결같이 경계가 흐릿하고 모호하다.
여자의 몸으로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와 존재 물음에 포착된 대상들을 불투명한 기법으로 질문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나는/얼굴 없는 모자/빈 모자//한 번씩 써보고 벗어두는 모자”(모자), “오직, 한 사람을 위하여 사는 삶은 무엇일까요?”(남강의 시간), “사진 한 장의 무게/얼마나 더 가벼워져야 나비가 될까?”(한 장의 무게) 등의 구절에서 느끼듯 결핍과 희망의 목록을 직조한다.
그러면서 “심장에 바늘을 꽂고 날고 있는 나의 나비야” 애타게 부르며 “나비야 나의 나비야 까만 발등 날아서 넘어가다오”(티베트 나비) 기원의 서사를 써 내려간다.
그것은 어쩌면 “비 온 뒤/지리산 중산리 산길에 나와/몸 말리는//놋젓가락 한 짝”(자화상)으로 표현되는 자의적 성찰이며 변화무쌍한 세계 속에서 흐르고 변화하며 생성한다.
오민석 평론가는 해설에서 조향옥의 시인은 “존재 물음은 현재에 대한 부정에서 오기도 하고, 과거에 대한 기억, 혹은 도래할 미래에 대한 소망에서 오기도 한다. 이 시집은 이런 다양한 계기들이 만들어낸 물음들의 집합”이라며, “그녀의 존재 물음은 고립된 단독자의 것이 아니라 관계 지향적 주체의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 대한 존재 물음의 반대편에서 항상 ‘너’에 대한 존재 물음이 동시에 등장한다”고 말한다.
조향옥 시인은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2011년 ‘시와 경계’로 등단한 뒤 첫 시집 ‘훔친달’을 펴냈다.
지난해에는 경남 문학 시 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 조향옥 시인 두 번째 시집 '남강의 시간' 대표작
모자
나는
벗어두는 얼굴이 많다
접고 포개놓는 모자 속에
모르는 내 얼굴이 많다
정동진 파도 눈썹 위로 밀려오던 날
철로 위로 굴러가는 솔잎과 모자
모래 털고 솔잎 떼어내고
모자 속에 손을 넣고 역사 한 바퀴 빙 둘러보고
건네는 내 모자
해안선 따라가는 수평선과 모래와 바람
벤치 앞 출렁이는 바닷물을 두고
철길은 프레임을 벗어나고 있다
나는
얼굴 없는 모자
빈 모자
한 번씩 써보고 벗어두는 모자
나는
쓰지 않는 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