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은 소방관으로 건물 붕괴나 화재 현장에 투입된다. 위급 상황이 빚어질 우려가 있지만 거의 헬멧을 쓰지 않는다. 차를 운전하는 장면에서도 안전벨트는 강일의 몸을 두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 자리에 그대로 있다. 특히 조수석에 함께 탄 여주인공 ‘미수’(한효주)가 안전벨트를 꼭 챙겨매는 것과 대조적이다.
25일 개봉하는 재난 휴먼 블록버스터 ‘타워’(감독 김지훈)에서 소방관인 주인공 ‘강영기’(설경구)가 거의 모든 장면에서 헬멧을 꼭 착용한 것과도 차이가 있다.
사극의 전투신에서 주요 배우들이 투구를 거의 안 쓰고 나오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되고 있다. 투구를 쓰면 얼굴이 가려지는 것은 물론 대사나 액션을 하는데 불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설경구(44)는 “‘타워’를 찍으면서 헬멧을 쓰다 보니 얼굴이 많이 가려지더라. 대사를 하고, 연기를 하는데도 불편했다. 실제 상황이라면 산소마스크까지 해야 했겠지만 영화라 하지는 않았다. 만약 산소마스크까지 했다면 관객들이 배우들의 얼굴을 전혀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렇다면 안전벨트는? 연출자 정기훈(38) 감독은 “강일이 안전벨트나 헬멧 착용을 잘 하지 않았던 이유는 ‘안전 불감증’을 가진 인물이라는 설정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정 감독은 “극중 강일은 아내를 잃고 삶의 의지를 상실한 남자다. 그래서 늘 자신의 일에 의욕이 없지만 막상 일을 할 때는 자신을 돌보지 않은 채 가장 먼저 위험한 일에 뛰어들게 된다”면서 “그런 강일의 캐릭터에 꼬박꼬박 안전벨트를 채워주고, 헬멧이나 안전장비를 하게 한다는 것이 내게는 모순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반면, 미수는 지독한 이기주의자다. 그녀는 꼬박꼬박 안전벨트를 매고 안전벨트가 허술하다며 투덜대기도 하며 심지어 냉동창고 안에서 살기 위해 국민체조를 하는 그런 캐릭터다. 대사에도 나온다. ‘나는 죽는 게 제일 무섭다’고. 이렇듯 미수는 강일과 정반대에 서있는 여성이니 강일과 반대의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면서 “그래서 나는 과감하게 그런 부분들을 배우들에게 요구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정 감독은 “우리 영화는 의외로 안전을 강조한 영화”라고 강조했다. ”한 예로 강일이 기차 길에서 사람을 구하다 기차와 스치며 헬멧이 날아가는 장면도 헬멧의 중요성을 강조한 장면이었고, 무너진 건물에서는 아예 헬멧을 벗고 있지만 이후 죽을지도 모르는 순간에 ‘미수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자 바닥에 떨어진 헬멧을 주워서 쓰게 되는 것도 그런 의미다.”
“결과적으로 강일은 그 헬멧으로 인해 살아남게 된다. 영화 속에서 그 모습이 잘 묘사되지 않았다면 그건 이 영화가 어떠한 교훈을 주고 싶은 영화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라면서 “강일의 캐릭터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가 왜 안전벨트나 헬멧을 쓰지 않았는가에 대한 의문은 풀릴 것이라 생각한다”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