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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성영희 시인의 詩는 책 속에 갇혀있지 않는다

  • 대전
  • 입력 2019.12.04 11:57
  • 수정 2019.12.04 13:51

[스타트뉴스=이철휘 기자]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지 2년만에 성영희 시인이 두 번째 시집 『귀로 산다』를 펴내 독자들에게 눈길을 끌고 있다.

성 시인은 섬세하고도 우직한 시선으로 사물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힘이 시에 고스란히 담아 있다.

 

시를 읽으면 시 속 사물들이나 사람들이 손발을 움직이며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녀의 시편에서는 파도 속 미역귀(「미역귀」)도, 공중 위의 페인트공(「페인트공」)도, 하역장의 나무들(「나무들의 외래어」)도, 몸통 절반이 잘려나간 지렁이 (「환지통」)도 온통 살아서 꿈틀거린다.

 

없는 발목이 가려워 자꾸 발을 뒤척이는 것처럼/꿈틀거리는 모습이 필생을 건 사투라는 문장에서 보듯, 성실하고도 날카로운 은유를 통해 그만의 시적 미학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성 시인은 요술쟁이다.

 

만물의 치열한 고투(苦鬪)에 촉수를 곤두세운 시인은 마치 어제 죽은 이의 사리를 계단에 펼쳐놓고 내일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헹구는 도비왈라(「여름 궁전」)처럼, 폐허를 두들겨 빨면 흰 바람 펄럭이는 궁전으로 완성한다.

 

늘 사랑과 관심,배려를 읊는 성 시인은 충남 태안 출신으로 201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와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한해 2관왕으로 당선되어 화려하게 데뷔했다.

 

시집으로는 『섬, 생을 물질하다』가 있다.

 

2014년 제12회 동서문학상과 2015년 농어촌 문학상을 연이어 수상했다.

 

성영희 시인
성영희 시인

<미역은 귀로 산다>

바위를 파고 듣는 미역줄기들

견내량 세찬 물길에 소용돌이로 붙어살다가

12첩 반상에 진수(珍羞)로 올려졌다고 했던가

깜깜한 청력으로도 파도처럼 일어서는 돌의 꽃

귀로 자생하는 유연한 물살은

해초들의 텃밭 아닐까

미역을 따고 나면 바위는 한동안 난청을 앓는다

돌의 포자인가,

물의 갈기인가, 움켜쥔 귀를 놓으면

어지러운 소리들은 수면 위로 올라와

물결이 된다

파도가 지날 때마다

온몸으로 흘려 쓰는 해초들의 수중악보

흘려 쓴 음표라고 함부로 고쳐 부르지 마라

얇고 가느다란 음파로도 춤을 추는

물의 하체다

저 깊은 곳으로부터 헤엄쳐 온 물의 후음이

긴 파도를 펼치는 시간

잠에서 깬 귀들이 쫑긋쫑긋 햇살을 읽는다

물결을 말리면 저런 모양이 될까

햇살을 만나면 야멸치게 물의 뼈를 버리는

바짝 마른 파도 한 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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