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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미 명사칼럼] 우리 부부가 사는 법
[김해미 명사칼럼] 우리 부부가 사는 법
  • 이철휘 기자
  • 승인 2019.06.04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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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미(소설가. 대일문인협회 회장)

 

김해미 소설가
김해미 소설가

 곧 우리 부부는 결혼 40주년 기념일을 맞는다. 오랜 시간 참고, 잘 살아왔다. 이날은 특별히 맛난 안주를 장만하여 술 한 잔을 나누면서 그동안 함께해준 남편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말을 하고 싶다. 한때는 기념일마다 애들과 함께 날 잡아 여행을 간다거나 보고 싶은 영화를 함께 보는 등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둘의 취향이 워낙 다르다 보니 번번이 어려움이 많았다. 유독 한식만 찾는 남편은, 음악도 판소리와 국악 등 우리 음악을 더 좋아하며, 옛날 농촌 풍경이 나오는 극히 제한된 소재의 한국영화만 본다. 반면에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새로운 음식을 즐기는 편이며, 음악도, 영화도, 전시회도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그러니 무엇이든 남편과 함께 하려면 내 쪽에서 무조건 양보해야 한다.
 신혼 초부터 난을 키우기 시작한 남편은 오늘까지 생활의 사이클 대부분이 난에 맞춰져있다. 휴일이면 난의 채취를 위해 전국의 난 자생지라는 곳은 안 가본 곳이 없다. 그렇게 훈련된 등산 실력은 나는 감히 따라갈 수 없을 날다람쥐 수준이다. 어쩌다가 함께 산이라도 오를라치면 내 상태가 어떻든 꼭 정상을 올라야 직성이 풀린다. 내 사정을 봐주는 법이 없다.
 은퇴를 앞두고 돌연 판소리를 배우겠다고 나선 남편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맹연습을 하더니만 7년 후 전국 유명한 판소리 대회(신인상 부문)에 나가 덜컥 대상을 거머쥐었다. 그 후 취미생활을 함께 하는 게 좋겠다며 은근히 고수의 길을 종용해서 나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솔직히 남편 덕에 간신히 어섯눈을 떴을 뿐, 나는 사실 그쪽엔 흥미도, 재능도 없다.
  다행히도 힘이 부쳤는지 남편은 판소리를 접고 7년 전부터는 서예를 하고 있다. 아마도 하루 중 5시간은 서실에 파묻혀 지내는 것 같다. 금년 봄에 드디어 꿈을 이뤄 초대작가가 되었지만, 한군데에서 마저 실력을 검증 받고 싶다면서 작품의 마무리를 위해 지금 눈 코 뜰 새가 없다. 좀 더 빨리 시작하지 못한 것이 애석할 뿐이라는 그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남편을 보고 간데없는 ‘선비’라 한다. 뒤늦게라도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는 것은 본인에게도 큰 축복이다. 이번에도 남편은 나와 취미생활 공유를 바랐지만 어림없다. 그림이라면 모를까, 십 수 년 동안 남의 서체를 무한반복 섭렵해야 하는 서예의 길은 나에겐 고행이나 다름없다. 
  얼마 전 서랍 정리를 하다가 내가 쓴 것이 분명한 ‘남편의 단점 10가지’라는 메모를 발견했다. <성미 급한 남편은 외출할 때마다 늘 나보다 세 걸음 앞서서 채근한다. 반면 정작 본인이 급히 처리할 일에는 느긋하다. …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고 두서가 없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 화난 것 같은 남편의 큰 목소리 때문에 신경 쓰인다. 제발 불났을 때 외는 고함치지 말아 달라. … 부엌일을 도와주는 건 고맙지만, 구석구석 다니면서 잔소리를 하여 나의 화를 돋운다 …. > 그런데 어쩌면, 강산이 서너 번 바뀔 세월이 지났는데도 남편에게는 달라진 점이 별반 없다. 곰곰이 살펴보니 그 중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게 개선되었다. 불만이 많은 사람처럼 늘 찡그리고 다니던 남편의 얼굴이 조금 펴져서 가까스로 흉한 얼굴은 면하게 된 것이다. 오히려 내 쪽에 온 변화도 있다. 때로 내가 먼저 준비하고 그를 채근하는 일도 생겼다. 남편의 성급한 성격은 아직도 내겐 여전히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이다.
  최근에야 가까스로 내 인생 최고의 명구(名句)를 만났다. 고쳐지지 않는 남편의 여러 성향 때문에 그토록 오랫동안 속앓이 했던 것이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니체가 스위스 엥가딘에서 쓴 ‘방랑자와 그 그림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 …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삶을 사는 사람을 그 상태 그대로, 자신과는 반대의 감성을 가진 그 감성 그대로 기뻐하는 것이다. 사랑을 이용하여 두 사람의 차이를 메우거나 어느 한쪽을 움츠러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 모두 있는 그대로 기뻐하는 것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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