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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미(소설가, 대일문인협회 회장)

[김해미 명사칼럼] 어른노릇 제대로 하기

  • 칼럼
  • 입력 2019.04.29 14:02
김해미 소설가
김해미 소설가

대전시와 대전문화재단이 2017년 신설한 향토예술인창작지원금을 몇몇 원로문학인들이 부정수급한 일이 생겼다. 23명의 해당 문인들 중 7명이 2017년과 2018년 연속으로 지원금을 받은 후 개인 작품집을 발간하면서 거의 표지만 바꾸거나 전작에서 발췌하여 발간을 한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시조시인 J씨는 91편 중 90편이 동일했고, 소설가 K씨는 3편의 단편소설 중 2편을 제목만 바꿔 그대로 실었으며, 수필가 A씨는 74쪽 분량을, 시인 B씨는 추려서, 동시인 C씨는 전체분량의 25%를 재수록 했다 한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것은 이들의 책이 모두 대전의 한 유명 출판업체에서 발행되었으며, 이 출판사의 대표 역시 지역에서는 꽤 영향력이 있는 원로문인이라는 점이다.

7명의 원로문인들 중 몇은 전국적으로 지명도가 있으며, 한때는 대전 문단을 위한 밑거름이 되었던 이들이다. 어쩌면 더 늦기 전에 대표작선을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원작보다 나은 작품을 남기고 싶은 문학인으로서의 욕심이었다면 좀 더 뜸을 들인 후에 누가 보아도 퇴고의 흔적이 역력한 작품으로 재탄생시켰어야 했다작품수가 부족하다면 급하게 연속해서 창작지원금을 받을 것이 아니라 좀 더 차분히 작품을 준비한 후 지원을 받아야 했다. 한창 때라면 모르겠으나 해마다 책을 낸다는 것은 애당초 무리이다. 장르가 다른 책자 발간이라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한 어림없는 일이다. 이 점을 미리 헤아리지 못한 문화재단 측의 불찰도 크다.

개인예술창작 지원금 제도를 도입한 목적은 지역문화예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시민들에게 문화향유의 기회를 주려함이었을 것이다. 사회 전반의 깊은 각성과 협조로 만들어진 이 제도 덕분에 많은 예술가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최소 경비나마 지원을 받아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대전시에서는 지역의 원로들을 대접하는 차원으로 향토예술인 창작지원금제도를 마련한 걸로 안다. 타의 모범을 보여야 할 원로문인들이 더 좋은 작품으로 보답을 하지는 못할 망정 이러한 추태를 보이다니, 곧 원로가 되는 지역문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다.

대전문화재단에서는 이들에게 지원금 환수를 요청했으나 아직껏 어느 누구도 환불한 이가 없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 중엔 생계가 어려워 환불할 수 없는 처지이거나 병환 중인 이도 있단다. 생활보호대상자도 한 두 명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모든 책자를 출판한 출판사가 책임을 통감하고 그들의 환급금을 대신 내줄 의사를 보였다는 점이다.

원로란 어떤 분야에 오래 종사하거나 나이와 공로가 많고 덕망이 높은 사람을 말한다. 신구약 시대의 원로들은 그들의 경험과 지혜로 사람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으며 신앙공동체를 이끌었다. 그들은 정치, 종교, 법률, 군사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요즘에야 그 정도는 아니어도 원로에 대한 기대는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어른노릇을 제대로 하는 것이 그래서 어렵다.

알고도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다수가 서운하더라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없으면 이 세상은 발전이 없다. 한 중견문인의 용기 있는 문제 제기 덕분에 수면에 오른 부정수급 문제다. 모두가 그냥 지나치는 일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이로서의 사회적인 소임과 책무를 생각한다. 모쪼록 이번 일이 잘 마무리되어 혜택에서 제외되었던 실력 있는 원로 예술인들이 창작열을 불태우고 실질적인 결과물을 낼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사태가 더 이상 잡음 없이 끝나기를 바라며, 한 중견작가의 고발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세상은 이 처럼 용기 있고 소신 있는 몇 사람에 의해 움직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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