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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희(충남서천교육지원청 교육장)

[기고] 지금은

  • 기고
  • 입력 2019.05.09 18:55
  • 수정 2019.05.09 18:56
신경희 교육장
신경희 교육장

꽃샘추위의 몽니 속에서도 산수유, 청매화는 한창이고, 친정집 구부정한 살구나무에도 꽃잎이 한 잎 두 잎 터지면서 봄이 제자리를 찾습니다. 노목(老木)의 굳은 몸속에 곰삭은 그리움 앞세우고 첫사랑인 듯 다시 꽃이 핍니다. 계절은 누가 뭐라든 세상이야 어찌 돌든 무심히 제 자리를 찾건만, 주체할 수 없는 이 마음은 국수 면발처럼 떨어져 내리는 봄 햇살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립니다.

비단 올 봄에 유난한 봄바람 때문만은 아닙니다.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의 첫 페이지 같은 찬란한 허무를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던 그런 사소한 이유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보니 어찌할 바 모르고 허둥대는 마음을 대책 없이 설명할 수 없는 날이 참 많았습니다. 그 누군가에게 마음을 거는 일,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무심한 부재를 슬퍼하며 무겁게 매달리는 삶의 일상에서 흔들린다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요즘 들어 퇴근길이 부쩍 길어졌습니다. 마음 둘 길 없다는 이유를 붙잡아 바닷가를 돌고 돌아 다시 우회로를 돌아, 하늘 가까운 언덕 위에 서서 한없이 봄바람을 맞고 돌아오는 날들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허기진 마음을 다 채울 수 없어 다시 한 번 도는 날이 잦아집니다.

어느 시인은 흔들림에 대하여라는 시()에서 <흔들리는 것은 살아 있다/흔들림으로 업을 삼은 깃발은/그 흔들림으로 살아 있다. (중략) /살아있음은 흔들려 몸부림친다는 것/흔들어다오/누군가의 깃대 위에/그 흔들림의 마지막까지/온몸으로 살아있고 싶다> 라고 노래했습니다. 흔들린다는 것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라니 퍽 위안이 됩니다. 새로 맞이한 오월엔, 지난 겨울 옹이 진 가슴 풀어 헤치고 한층 가벼워진 생각으로 마음으로 그렇게 살아야겠다 다짐을 해봅니다.

화려하게 꽃피우는 것만이 봄을 기다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친정집 대봉 감나무 곁에 죽은 듯 서 있는 엄나무도 가시와 가시 사이 거칠고 좁은 황무지 같은 살결에 동상 입은 듯 스스로 붉은 상처 내며 진실로 봄을 기다려 왔습니다. 예쁜 봄꽃들 꽃 피우고 새잎 내밀 때 그도 제 아픈 상처 찢고 착하고 푸른 새순을 밀어 올리고 있습니다.

엄나무 가시 사이로 부풀어 오르는 봄처럼 가장 엄격한 자세로 겨울을 견딘 것들에게 가장 뜨거운 봄이 찾아왔다 가는 건 당연한 순리이겠지요. 벚꽃이 만개해 꽃비가 흩날린다고 뉴스 때마다 야단법석인 게 엊그제 입니다마치 함박눈이 내리 듯이 4월의 허공이 벚꽃 천지로 환해졌었죠. 그 여린 분홍 빛, 피우자마자 산화한 꽃이라지만 설렘으로 기다렸었죠. 더 이상 내가 누군가의 분홍빛이 아니어도 이 봄이 정녕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 한 가득입니다.

오시자마자 가실 봄입니다. 짧아서 더욱 귀해진 봄날입니다. ‘봄날은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지층 어딘가에 한 켜 또 쌓이는 꽃무늬 화석이라던 어느 시인을 떠 올리며 자꾸만 사람에게 욕심부리려하는 마음, 집착하려드는 옹졸해진 마음, 헤아릴 수 없이 흔들리는 마음을 한 장 한 장 꽃잎처럼 내려놓는 연습, 햇살 한줌 창가에 놀다 가는 지금은, 홀로 가는 이 봄날을 견디는 연습 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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