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부터 포근하던 일기(日氣)에 봄이 너무 일찍 찾아들었다며 수선을 떠는 동안 초고농도의 미세먼지는 세상을 온통 희뿌연하게 덮어버렸습니다. 이런 세상이 지속된다면 정말 못 살겠다 생각하던 차에 잊었던 꽃샘추위가 어김없이 찾아들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요. 겨울이 그 자리를 그리 쉽게 내어줄리 있나요. 덕분으로 세상은 반짝 환해지고요. 며칠은 파란하늘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참 다행스런 일이다 싶었습니다.
아침 저녁, 영도 안팎으로 내려간 싸한 시각에도 청사 뜰에 묵묵히 서 있는 목련 꽃잎은 여물어지고, 청매, 홍매 꽃잎들이 제법 피었습니다. ‘나무 가득 꽃을 피운 것은 아니지만 꽃이 피었는데 오던 봄이 되돌아간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던 어느 시인의 글귀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꽃샘추위는 꽃이 살아있게 하는 힘이고, 꽃은 우리가 살아있음을 알게 하는 힘이 되고 있습니다.
봄은 생각보다 느릿느릿 옵니다. 애타게 기다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느 날 갑자기 봄이 와 있는 것 같지만, 간절히 기다리는 이에게는 그리 쉽게 오지 않습니다. 오다 섰다를 반복하며 때로는 몇 발짝 뒷걸음질 치면서 애를 태우지요. 그래서 우리에게 봄의 의미는 더욱 커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봄이 지나고 나서야 봄을 그리워하는 몽유(夢遊)의 날들. 봄은 이렇게 아프게 오고 있는 것을. 봄이 주춤 뒷걸음치는 이 바람도, 티격태격 다소 불안정한 삐걱거림도 우리가 더욱 단단해져가는 과정이라 믿습니다. 오늘 내 시각, 충분히 붉고 어지럽습니다. 그래요. 공기도 동동거리며 바쁘게 들고나고 있어요. 매화가지 끝에서 제 혼자 부풀다 툭툭 터지고야 그래야 비로소 봄이 오는 거지요.
아무 일 아닌 것도 걱정이 되는 것이 사랑의 일이라 했던가요. 슬픔도 폭 삭으면 기쁨 되리니. 씨에서 싹이 나듯 마른 가지 끝에 새싹이 돋아나듯이 지금 이 기다림의 위력으로 나약한 성깔에 새순을 내고 있습니다. 오십이 훌쩍 넘은 나한테까지 날아온 새 봄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요. 어디에도 발이 닿지 않는 나를 위해 오늘도 눈 감고 가만가만 봄을 꼽아봅니다. 사랑은 두려움으로 다시 첫사랑입니다.
뼈에 사무치는 차가움이 있고서야 매화꽃 향기를 얻을 수 있다는 ‘한철골 박비향(寒徹骨 撲鼻香)’ 당나라 고승 황벽선사의 시(詩)를 떠 올리며 오늘도 희망의 향기를 품어 봅니다.
새 봄입니다. 묻혀있던 것들의 환호가 아지랑이로 피어오르고, 햇살 톡톡 터트리며 새 생명의 이름들이 줄지어 일어섭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물처럼 흘러가는 시간 푸릇푸릇 새싹이 돋습니다. 시시(時時)로 깊어집니다. 봄은 그렇게 우리 곁으로 다가와 낱낱이 짙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