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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금선 명사칼럼] 빈 집
[노금선 명사칼럼] 빈 집
  • 이철휘 기자
  • 승인 2019.03.04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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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금선(방송인,시인,선아복지재단 이사장)
노금선 방송인
노금선 방송인

산골 마을의 겨울은 쓸쓸하고 고적하다 잎 떨군 나목의 처연한 모습
텅 빈 거리에 부는 찬바람
작은 교회의 십자가도 예수님처럼 외롭다
기차가 지나가버리는 마을
윙윙 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가로등
벗겨진 비닐하우스 안이 으스스 떨고 있다
따뜻한 모든 것이 그리워지는 계절

그냥 와서 살라고 이웃에게 빌려주고 떠났던 고향집. 그 사람들도 얼마 전  다른 곳으로 이사 가서 썰렁하게 비어있는 빈 집 정리도 할 겸 며칠 있다 가려고 내려와 불을 때고 일찍 누었으나 잠이 오지 않는다.

“빈집에 들어와서 문득 나를 만난다. 잊혀진 것들의 고요를 만지며 오래된 나를 쓰다듬는다.” 강민숙 시인의 빈집 한 구절이 생각난다. 사람의 일생이 빈 손으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무엇인가 끊임없이 채우다가 결국은 빈손으로 돌아간다. 바쁘게 바쁘게 무엇인가에 쫓기듯 살다가 내가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 조차 잊어버린 채 어느 날 돌아보면 허무한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그 속엔 버려진 시간처럼 쓸모없는 것들도 있지만 더러는 잊혀진 것들 속에 남아 있는 아름다운 추억도 있을 것이다.

긴긴 겨울밤 잠조차 잃어버린 새벽 세시 출출한 속 채우려고 부엌으로 들어가 군불 때고 난 불씨 속에 구어 놓았던 고구마를 따뜻한 물과 함께 먹으며 그 옛날 어머니를 생각한다. 가난한 집 유복녀로 태어나 두 살 때 어머니마저 잃고 외가댁에서 눈치 보며 자라 학교는 구경도 못하시고 식모살이 전전 하셨던 어머니. 머슴살이 때려치우고 장사하러 다니시던 아버지를 중매로 만나 시골로 내려와 사셨다 아들 둘을 낳으셨는데 모두 어릴 때 홍역으로 잃고 세 번 째 오빠를 낳으셨고 그 아래로 딸 둘을 낳으셨으니 어머니에게는 귀하디 귀한 아들이었고 전부였었다.

이른 새벽 잔 기침으로 일어나신 아버지는 소여물 끓이러 헛간 쪽으로 가시고 어머니는 신음소리를 내며 일어나 샘터로 가신다. 쪽빛 달이 아직도 중천에 떠 있는 시간, 멀리 개 짖는 소리 들으면서 정한수 한 그릇 떠놓고 기원부터 올리셨다.

날마다 그렇게 빌고 또 빌며 군대 간 오빠가 무사히 돌아오길 기다리셨던 어머니. 제대 얼마 앞둔 어느 날 오빠의 죽음 소식을 전해 듣고 실신 하시더니 그 길로 삼년을 누워 실어증환자처럼 앓다가 돌아 가셨다. 삼년 안에 하나뿐인 외아들과 부인을 잃은 아버지는 두 딸을 데리고 대전으로 이사 나오셔서 언니와 나를 키우시다 몇 년 전 치매로 고생하시더니 어머님 곁으로 가셨다. 그 산골 마을에 전기도 들어오고 기차 길도 생기고 상수도도 들어오지만 아직도 집은 흙집으로 남아있고 부엌 아궁이도 그대로 놓여있다.

삭막한 인생을 살다 가신 어머니의 한 생애는 오직 겨울 뿐이었다. 그 겨울을 생각하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이 우리가 가야하는 마지막 길인데 어쩌다 우리는 삭막한 도심으로 유배되어 본질조차 잊고 사는지. 어머니에 대한 소복이 쌓인 그리움을 따뜻한 방안에 누워 한 켜씩 녹여 내리는데 창밖으로 소리 없이 반가운 손님이 찾아와 있었다. 온 천지가 하얀 빛으로 단장하며 모든 걸 덮어버렸다. 폭설과 강풍 혹한 속에서도 몸을 뒤척이며 봄을 기다리는 저 무언의 침묵이 이 겨울을 이기고 봄 빛으로 차오르리라. 어머니의 삶도 그랬으리라. 아들 둘을 먼저 보내고 하나 남은 아들을 희망처럼 생각하며 살았을 텐데, 그 아들마저 잃었을 때 엄마의 봄은 영영 오지 않으리라고 절망했겠지.

그러나 우리가 오르지 못할 산이 없고 건너지 못할 강은 없다. 태산이 높을수록 계곡이 더 깊고, 아득하 듯 우리 삶의 여정도 순탄한 길만 있는 것이 아닌 늪지대를 지나오지 않았는가. 어느 누구의 인생도 당신 앞에선 감히 힘 들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가시밭길 같은 당신의 삶 속에서도 당신은 생명을 잉태했고, 그 생명의 하나로 내가 태어나지 않았는가. 딸이라 당신 안중에는 없었겠지만, 나는 당신을 한없이 존경하고 감사한다. 나는 지금이라도 어머니의 봄이 되고 싶다. 비록 곁에는 안 계시더라도 어머니가 주신 생명체로서 최선을 다해 살면서 이 추운 겨울을 벗어나 봄을 맞이하리라.

잠깐 눈 붙이고 나오니 천지가 온통 은빛 세상이다. 삭막하고 쓸쓸하던 산천은 간 곳이 없고 푸근했던 어머니의 가슴처럼 소복이 눈이 쌓여 있다.
고향집에 들어오길 잘 했다는 생각과 어머니의 일생이 결코 외롭지만은 않았을 거란 생각도 해본다.
마당 눈을 치우고 부엌에 들어가 군불 지피고 있으니 굴뚝 연기를 보셨는지 옆 집 할머니가 눈길을 헤치고 부엌으로 들어오신다. “이제 빈 집에 사람이 찾아 왔네.  응 그려, 집은 비워두는 게 아니어. 사람이 살아야 집 꼴이 되는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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