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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미(소설가, 대일문인협회 회장)

[김해미 명사 칼럼] 훈육의 세계

  • 칼럼
  • 입력 2018.12.28 17:25
  • 수정 2018.12.28 17:34
김해미(소설가)
김해미(소설가)

귀가길, 학교 앞길 바닥에 떨어져있는 노트 한 권을 보았다. 웬 노트인가 싶어 한 권을 집어 들고 일어서려는데 그 뒤를 이어 또 한 권의 노트가 떨어져있다. 노트를 펴보니 새 노트이다. 그걸 들고 걷다보니 또 한 권의 노트가 눈에 띈다, 이번에는 아예 서너 권이 함께 놓여있다. 그렇게 해서 모두 스무 권의 노트를 주웠다. 근처 학원에서 홍보용으로 학생들에게 나누어 준 모양이었다. 가로나 세로로 줄이 쳐 있는 것도 아니어서 크로키를 한다거나 삽화를 그리거나, 어쨌든 어떻게 사용해도 무난한 다용도 노트였다. 그런데 왜 학생들은 이 노트를 거리에 버렸을까?

우선 든 생각은 요즘 물자가 흔해도 너무 흔하구나. 그리고 두 번째는 4, 13주 집중적으로 영어, 수학을 가르친다는 과도한 학원홍보가 아이들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거였다. 설령 두 가지가 다 해당이 된다 하여도 이건 아니다. 만약 우리 손자가 그랬다면 이건 따끔하게 나무랄 일이다.

큰애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였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새로 나온 나이키 운동화를 사달라고 졸라댔다. 당시 우리 형편으로는 제법 비싼 수입품 운동화인지라 안 된다고 잘라 말했지만, 절친한 친구 형준이도 신었고, 사촌동생 일식이도 신었는데 왜 나는 안 되냐며 어찌나 막무가내인지 난감했다.

며칠 후 마침 남편이 회사에서 체육행사 때 신으라고 주었다며 같은 상표의 운동화를 가지고 퇴근 했다. 남편과 상의한 후 매장에 가지고 가서 큰애의 운동화로 바꾸어 주었다. 워낙이 제가 가지고 싶은 물건에 대한 집착이 강한 아이라서 더 시달릴 생각을 하면 내 머리가 아픈 탓이 컸다. 아직도 그것을 받아들고 흡족해하던 큰애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얼마 전 사위를 보았다. 큰애와 사위는 한 살 터울이어서 대화 중에 나이키 운동화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위는 엄마가 그 운동화를 사주지 않아 서운한 나머지 다음날 부모님과의 주말 나들이를 단호하게 거부했단다. 안사돈은 새로 사준지 얼마 안 된 국산 운동화도 아직 신을 만 한데, 왜 굳이 비싼 외제 운동화를 신으려는가 하고 아들을 따끔하게 혼냈다고 했다. 세상에 하나뿐인 외동아들에게 브랜드 운동화 한 켤레 못 사줄 건 없지만, 원한다고 해서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다는 걸 가르치고 싶었을 것이다.

사돈내외는 나들이 거부를 그저 아들에게 사춘기가 빨리 왔다고 여겼을 뿐, 그것이 일종의 시위인 줄 꿈에도 몰랐다며 소리 내어 웃었다. 나도 함께 따라 웃었지만 그때 나도 안사돈처럼 제대로 아이를 훈육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가슴이 뜨끔했다.

성경(잠언 2313)에 자식을 훈계하는 것은 채찍으로라도 죽지 아니 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한다고 되어 있다. 적절한 훈계는 부모만의 특권이다. 요즘 우린 너무 자주 우리의 특권 행사를 포기하고 있지 않나 모르겠다.

옛날 영상을 보면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이 지금의 아프리카 아이들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세계가 놀라는 빠른 경제 성장 덕분에 우리는 마치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이라도 된 양 착각에 빠진 건 아닐까. 우리는 아직도 갚아야 할 부채와 해야 할 과제가 너무나 많은, 세계에서 하나뿐인 분단국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불과 반세기 전만해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그것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마치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살아온 듯 허세를 부리고 있는 건 아닌가 되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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