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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금선(방송인, 문학박사, 선아복지재단 이사장)

[노금선 명사칼럼] 다시 가을이다

기자명 양해석
  • 칼럼
  • 입력 2018.11.30 16:11
  • 수정 2018.12.24 16:52
노금선 방송인
노금선 방송인

지난 여름의 무겁고 힘든 폭염과 열대야 다 잊은 채 다시 가을이 왔다.

지쳐있던 세월의 소리에 삶의 속살들이 헤집고 나오듯이 서늘해진 바람 속에 갈대의 흔들림이 애잔하다.

윤회로 빚어낸 저 억새의 춤사위가 없다면 가을의 정취도 제 맛을 나타내지 못했을 것이다. 파란 하늘아래 바람이 풀어놓은 영혼의 소리, 바람의 형상이 드러난다. 무리지어 청춘을 휘날리며 들판을 점령하더니 어느새 하얀 머리 휘날리는 백발이 되어 능선을 휘감고 나가는 가을의 전령자.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가는 것이 어디 억새뿐이랴.

사람도 바람 따라 세월 따라 흔들리며 살고 있다.

가을이면 나는 상념 하나 데리고 갈대숲으로 길을 떠난다.

밟히는 억새 사이를 걷다보면 삶의 부대낌이 맑았게 씻겨 내린다.

그래서 가을을 상념의 계절이라 했던가,

억새꽃 씨앗은 씨앗 구실을 못 한다. 거의 모든 씨앗은 흙에 묻어야 싹이 나지만 억새풀 씨앗은 바람 따라 떠다니다 끝이 난다. 어느 의미에서 억새는 바람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바람의 꽃이 어디 또 억새 뿐 이던가.

청정한 바람 해맑은 창공에 유유히 떠있는 하얀 솜사탕.

가을은 숱한 시와 문장으로 담겨지고 허무한 사유들이 강물처럼 흐른다 또한 욕심 비우고 나면 가장 큰 충만함이 채워진다. 놓쳐버린 세월도 생각해보고 다가올 세월도 생각해보고 잊었던 사람도 다시 생각해보자.

세상의 어느 존재가 주는 듯 빼앗아 가는 세월의 이치를 거역할 수 있을까.

바람과 세월은 모두의 소유고 모두의 무소유이다. 세월이 흐르는 소리가 바람이고 바람이 흐르는 소리가 세월이라 어느 시인은 말했다.

사람들의 지혜가 무한대의 세월을 쪼개고 쪼개어 시간이라는 것을 만들었지만, 단 일초도 내일을 아는 사람은 없다. 일초도 시간을 다시 사용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삶은 늘 시작이고 끝이지만 탄생과 소멸은 절대로 인간이 주관 할 수 없으며 그것은 신의 역영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내일은 늘 알 수 없는 미지의 여행과도 같다.

석양빛에 억새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면 그건 소멸의 시간을 예고하는 것이기에 더욱 서글퍼진다. 초승달 빛 애잔하게 비치고 바람에 서걱거리는 갈대숲 소리를 들어 봤는가.

살아온 세월 굽이굽이 묻어둔 생각들이 살아나며 마치 내 인생의 마지막을 예고하는 것 같아 더욱더 서글퍼진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가슴이 더 무거워지고 쓸쓸해지고 서글퍼져서 누군가가 그리워지고 그 그리움이 목 까지 차올라 알 수 없는 우울증으로 번지기 까지 한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번 뿐이지만 깨닫고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많이 가진 사람, 권력을 쥐고 세상을 흔들고 있는 사람,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조차 자기의 운명을 모른 채 살다가 바람처럼 살아지는 것이 인생이다. 더욱이 요즘처럼 바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다보면 가을인지 겨울인지 모른 채 그냥 시간 속을 허우적대며 건너가고 있을 뿐이다.

나이 탓일지 몰라도 가을은 어느 계절보다 더 상념이 깊어지며 살아온 날들을 회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내려 놓아야한다 비어야한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것들은 다 나누어 주고 떠나야 한다고 마음으로 다짐하지만 돌아서면 또 제자리일 뿐 욕망의 자리는 결코 비어내는 일이 없는 것 같다.

인생은 떠나서 뒤에 남는 뉘우침으로 산다고 한다. 떠나는 계절을 되돌릴 수 없듯이 한번 뿐인 우리인생도 되돌릴 수는 없다

한번 뿐인 우리의 인생,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한번 쯤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억새의 서글픈 노래 소리라도 들으며 찌든 영혼 속에 갇혀있는 부질없는 욕망의 덩어리들 다 떨어버리고 새롭게 반추해보는 겸허하고 정결한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자연이 무상으로 베푸는 이 가을 축복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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