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했던 10월을 아쉽게 보낸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11월도 중순을 넘어섰습니다. 시간이 참 빠르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지나간 그 많은 시간들은 대체 어디로 가 쌓이는 걸까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신없이 바빴던 10월을 보내며 11월에는 뭐라도 끄적일 수 있는 시간이 생겨날 줄 알았습니다. 아니, 그런 짬을 만들어 내리라 마음먹었습니다. 헌데, 여전히 뭔가에 바쁘게 휘둘린 채 도체 마음의 여유를 못 잡습니다.
제대로 된 단풍구경 한 번 없이 또 이렇게 시간이 가고 있으니. 빛바랜 단풍들을 바라보면서 함께 갈변해가는 마음들을 하나씩 털어냅니다. 알싸해져 버린 공기가 몸을 자꾸만 움츠러들게 합니다. 같은 숫자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끝끝내 닿지 못할 막막함으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 있는 11월 중순에 서고 보니 아무도 닿지 못할 세상의 외로움이 마른 풀잎 끝처럼 뼈에 스칩니다.
햇살이 유리창을 뚫고 사선으로 비칩니다. 조금 더 햇볕 쪽으로 다가앉습니다. 공손히 햇살 공양을 받습니다. 인디언들이 말하는 11월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부족마다 지칭하는 것이 다 다르지요. 크리크족은 ‘물빛이 나뭇잎으로 검어지는 달’, 테와 푸에블로족은 ‘만물을 거둬들이는 달’, 그 외도 여럿 있지만 특별히 제 맘에 들어 온 것은 아라파호족이 일컫는 ‘모두 사라진 것이 아닌 달’.입니다. 가을 들녘은 황량해도 모두 사라진 것이 아닌 달이 바로 11월입니다.
16년 전에 작은 집을 짓고 돌 틈 사이로 꽂아 두었던 국화들이 매년 이맘때면 존재감을 알리 듯 진한 향기로 꽃을 피워냅니다. 15년여 넘게 세월이 흐르다 보니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띄엄띄엄 돌 틈새로 갖가지 색으로 피어나 향기를 건네주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모처럼 짬을 내 계란 노른자처럼 노오란 핵을 지닌 자주 빛 국화를 한 바리 꺾어 화병에 꽂았습니다. 숨을 들이마시니 국화향이 가슴 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습니다. 화한 향내에 먹먹해진 마음이 울컥하기까지 했습니다.
늦가을 들판은 마치 봄부터 내내 자식을 끌어안고 키우다가 가을이 되면 다 내어주고 텅 비어있는 늙으신 어머니 같습니다. 겹겹의 산들이 단풍으로 물들어 경이롭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합니다. 이런 늦가을이면 너무 오래 품고 있어 형체마저 흐릿해진 그리운 누군가에게 무작정 편지를 쓰고 싶어집니다. <가을편지> 노랫말처럼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중략)/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울림이 있는 노랫말을 음미하노라면 지난 날 해바라기하던 그리운 사람의 손 편지들이 몇 장 남지 않은 잎새 사이로 걸어 나옵니다. 오늘 밤엔 만추의 마른 바람 속에서 서 있는 것이 얼마나 고독한지 아느냐고 알아주지도 않을 엄살을 섞어가며 한 줄, 한 줄 정성들여 편지를 써봐야겠습니다.
가을은 버리는 계절입니다. 일, 일상, 관계, 계절, 이 모든 것을 버리다 보면 가을을 낯설어하는 내가 보입니다. 모두 사라진 것이 아닌 달. 작은 온기 하나에도 충분히 눈시울 젖을 수 있는 파장의 이 계절, 어느 날 딱 하루만이라도 불현듯 떠나보고 싶습니다. 그 길에서 그만 놓쳐버린 나를, 모두 사라진 것이 아닌 나를 특별히 만날 수도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