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정적을 뒤 흔든 컬러링소리에 더듬더듬 손을 뻗어 폰을 집어 든다.
“방금 어머님이 운명 하셨습니다.” 요양원 원장의 차분한 목소리.
새벽 2시 5분을 지나고 있었다.
치매로 인지능력과 언어, 보행능력을 잃은 지 4년여,
어머님은 98세의 생을 마감하며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셨다.
누구나 부모님 마지막 길은 좋은 날로 편안히 가시길 원하리라.
올 여름은 얼마나 무더웠던가!
가시기 전날 대전 기온은 39도 5부.
그런데 장례 치르는 3일간은 기적처럼 선선한 가을 날씨 그대로 이었다.
무더위 막바지에 찾아주시는 조문객들에게 그나마 조금은 덜 죄송하였고,
야산중턱에 자리 잡은 공원묘지에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또한 큰 위안이었다.
장례 치른 다음날부터 다시금 찾아 온 무더위라니…!
아마 많이도 부족했을 이 외며느리가 그래도 밉진 않으셨나 보다.
백년 만에 찾아왔다는 무더위 막바지 중에서도 어찌 그리 좋은 날 3일을 골라 내셨는지…!
나는 한번 도 어렵다는 장례를 세 번씩이나 치렀다.
꽃다운 열여덟 살에 유부남에게 반해 시집 아닌 시집을 오고, 평생을 혼인신고도 못하고 자식도 없이 남편 곁을 지키다가 제일 먼저 떠난, 내게는 너무도 당당하게 시어머니노릇을 쫀쫀히 하셨던 작은 시어머님, 그 후 일 년도 채 못돼 작은 마님 곁을 뒤따라가신 시아버님,
남편보다 세 살, 작은이보다 열다섯 살이나 더 많으셨던 어머님은 오직 시댁에 올려 진 이름자에 위안 받으며 손자들 커가는 재미로 사시다가 이제야 남편 뒤를 따라 가셨다.
육 년 전, 아버님 삼오제때에야 가족묘를 둘러보시던 어머님은 그때 한쪽 켠 에 멀찍이 떨어져 누워있을 작은이의 존재를 눈치 채셨음 직도 하건만 아무 말이 없으셨다.
다만 묘비 뒤편에 새겨진 남편이름과 한 칸 건너의 작은이 이름의 위치로 보아 이제야 제대로 자리 잡게 될 당신의 자리를 아시고 안심하셨던 것인지…
삼오 제에 이어 어제도 남편과 함께 묘소에 다녀왔다.
아직 비석은 도착하지 않았고 엊그제 내린 비로 벌건 흙 틈을 비집으며 새파란 잔디가 삐죽삐죽 올라오고 있었다.
여기, 애증에 얽혀 평생을 가슴앓이 하시던 세분이 한줌의 가루로 나란히 누워계신다.
이제 당신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묘석에 세워질 때쯤이면 어머님은 생전처럼 양옆에 누운 남편과 작은이에게 손 내밀고 이승에서의 일일랑 모두 잊자며 다독여 주지나 않을까?
삼십대 초반, 과부 아닌 과부로 한 많은 세상을 살아오신 어머님!
이젠 가슴 아린 사연일랑 훌훌 털어 버리시고 부디 꽃길만 걸으시기를 빌어본다.
저 멀리 아스라이, 금강 물줄기 위로 드리운 맑은 하늘과 여유롭게 떠도는 몽실 구름이 한가롭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