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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칼럼-세상을 보는 窓_김해미(소설가,대일문인협회 회장)

김해미 명사칼럼 "구제 가게의 추억"

기자명 양해석
  • 칼럼
  • 입력 2018.10.05 15:11
김해미 소설가
김해미 소설가

내게는 세 명의 언니가 있다. 그 중에 유독 유행에 민감한 둘째 언니는 남보다 튀는 옷 입기를 좋아했다. 요즘처럼 물자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 적은 돈으로 멋을 내려면 판도라 상자만큼이나 다양한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구제 가게가 제 격이었다. 그곳에서 눈썰미 있게 찾아낸 개나리 색 원피스를 입은 둘째 언니의 모습은 아직도 내 기억에 선연하다. 함께 외출을 할 때마다 언니에게 쏟아지던 뭍 시선 때문에 내 어깨도 덩달아 으쓱했다. 언니는 동행하는 내게도 그 시절 유행이었던 분홍색 맘보바지를 입혔다. 언니와의 외출은 내게 늘 짜릿한 기쁨을 주곤 했다. 그때의 즐거운 기억 때문이었을까, 오랫동안 나는 패션모델이 되는 꿈을 꾸었다.

내가 언니와 같은 나이가 되었을 때에도 구제 가게는 내 구매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등 공신이었다. 또래 친구들보다 한걸음 앞서서 개성 있고 멋진 옷을 입으려면 구제 가게에서 보물찾기를 잘하면 되었다. 바다 건너 따뜻한 마음으로 보내진 기부물품이, 어떤 경로로 나에게 전달된 건지는 구태여 알 필요가 없었다. 그 무렵의 나는 단지 새로운 패션에 민감한 세대일 뿐이었다. 이제는 우리가 남을 도울 처지가 되어 우리 물건이 다른 나라로 보내진다 한다. 어디에서든 그때의 나처럼 무엇인가를 꿈꾸는 소녀가 있다면 반드시 그 꿈을 이뤄냈으면 좋겠다.

당대 인기 소설가 J여사가 자신은 이제부터 죽을 때까지 새 옷을 사 입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적이 있다. 구태여 모양을 낼 나이도 아니고, 모양을 내도 때깔도 나지 않으니, ‘아나바다해서 돈을 아껴 그 돈으로 무엇인가 좋은 일을 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IMF 이후인 1998. 여성시민단체에서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는 절약운동이 한창일 때 동참하면서 했던 말이었던 것 같다.

이제 나도 어느덧, J여사가 뼈 있는 선언을 하던 나이가 되었다. J여사의 말대로 이제는 더이상 좋은 옷과 물건에 욕심내지 말고 정리해야 할 연배가 된 것이다.

동네마다 구제 가게가 참 많이도 생겼다. 요즘 경제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무엇인가가 필요할 때면 나는 자연스럽게 구제 가게를 먼저 찾는다. 딱히 J여사처럼 소신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그곳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예전과 달리 요즘의 구제 가게에는 외국에서 보내 온 구호물품보다 나라 안에서 취합한 다양한 중고 물품이 쌓여 있다. 깜짝 놀랄 만큼 세련되고 깨끗한 물건이 많다. 그곳에서 나는 한 계절 입을 옷과 마음에 드는 가방과 이따금은 구두와 책도 장만한다. 최근에는 테이프와 CD, 라디오까지 들을 수 있는 오디오를 샀다. 그걸로 애들이 어렸을 때 녹음해 놓은 것들을 다시 들을 수 있어서 요즘 나름 . . 중이다.

이런 나를 본 친구들은 대개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몇 명은 나를 따라 보물찾기에 도전해보고는 횡재했다며 좋아한다. 그런가하면 굳이 산 후 수선까지 했으나 한 번도 입지 않는 친구도 있다. 결벽증이 있는 한 후배는, 남이 쓰던 물건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나를 의아해 한다. 어쩌면 죽은 이의 물건일지도 모르는데 사용하다가 동티나면 어떡하느냐는 거다. 나는 무릇 모든 사물은 세상에 태어나서 수명을 다 할 때가 있으니, 그때까지 누구든 조금이라도 더 활용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재활용의 개념이다.

요즘 구제 가게 물건들은 깨끗하게 손질이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물건의 종류도 참으로 다양하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아이들을 키우는 내내 아기용품과 신발, 옷과 동화책까지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젊은 엄마도 많다. 더러는 생활이 어려운 장년들도 들른다.

최근에 우리 동네에 인터넷 마켓이 하나 생겼다. 놀랍게도 젊은 사람들이 모여 아나바다를 실천하는 마트였다. 참 믿음직한 친구들이다. 나도 어떤 식으로든 동참하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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