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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미(소설가,대일문인협회 회장)

김해미 명사칼럼 '땅에서 잘 걸어 다니는 것이 기적이다'

기자명 이근희
  • 칼럼
  • 입력 2018.09.17 13:54
  • 수정 2018.09.17 14:17
김해미 소설가
김해미 소설가

모처럼 여고 동창모임에 참석하려고 염색을 하는데 남편이 급하게 나를 찾았다. 웬일인가 싶어 , 여기 있는데, 왜요?” 말하며 고개를 돌렸는데 그만 갑자기 왼쪽 등짝이 뜨끔했다. 숨을 쉬지 못할 격한 통증이 한차례 지나간 이후 몸이 굳어지는 것 같더니, 갑자기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듯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너무나 삽시간에 일어난 일이라 처음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동네 단골 한의원에 가서야 그것이 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후의 며칠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일상의 모든 것이 어려워졌다. 식사할 때도 양치질할 때도 시시 때때로 찾아오는 통증 때문에 걷는 것은 물론이고 앉아 있기도 누워있기도 쉽지 않았다. 평범한 모든 것이 다 힘들어졌다. 선현들의 말씀은 대개가 옳다. 건강이 중요하다는 건 건강을 잃어봐야 안다. 그동안 몸의 여기저기에서 신호를 보내오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응급처치만 한 것이 병을 키운 것일까. 이 참에 몸이 시키는 대로 당분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푹 쉬기로 헸다.

최근 친구의 병문안을 다녀온 남편은 급격히 식욕이 떨어졌다. 비암으로 코를 절재한 후 칩거하던 친구가 온 몸에 암세포가 전이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이었다. 고향의 같은 고교 동창으로 식물을 좋아하는 공통분모 때문에 각별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남편은 간신히 친구와 수기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글씨체는 아직도 달필인데 이제 맨 얼굴로는 아무도 마주하지 않는 듯, 친구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이제 그가 친구들의 면회도 반기지 않으니 더는 오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했단다.

남편의 먹거리에 이것저것 신경을 쓰다 보니 나름 힘이 들었나 보다. 전에는 며칠만 지나면 씻은 듯이 나아지던 이 일주일이나 머문다. 꼭 이럴 때, 긴한 모임이 있기 마련이다. 직접 통화가 되면 정중하게 사정을 이야기하면 편한데, 그렇지 못할 경우 괜한 오해도 생긴다. 꼭 기야 할 모임의 대표와 또 다른 모임의 두 분 선생님께 내 사정을 따로 전달했다. 괜한 걱정을 끼쳐 송구하다. 이래저래 건강할 때 내 건강은 내가 지켜야 한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잘 걸어 다니는 것이다.’는 중국 속담이 생각나는 나날이다. 맞다. 지금 내게 절실한 것은 오직 예전처럼 산책하고, 예전처럼 자유롭게 외출을 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다.

모처럼 남편과 함께 집 근처에 있는 현충원 둘레길로 산책을 나섰다. 싸아하게 콧속에 스민 공기가 그 어떤 때보다 산뜻하다. 스트로브 잣나무, 편백나무, 굴참나무를 지나 우리나라의 소나무인 적송을 만난다. 옹이부분이 혹처럼 튀어나오도록 사투를 벌인 끝에 살아남은 걸 자축하듯 송진을 줄줄 흘리고 있는 리기다소나무도 만난다. 반갑다. 너무도 반갑다. 이 모든 것을 다시 보고 만질 수 있다니 행복하다.

전문가용 카메라를 둘러맨 남녀 여러 명이 야생화를 찍느라 여념이 없다. 두런두런 망태버섯 군락지를 찾아 서성거리는 이도 있다. 나보다 연배가 꽤 되는 이도 무거운 카메라를 짊어지고 열심이다. 전엔 눈에 잘 보이지도 않던 작은 골짜기에서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도 정겹다.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핸드폰을 꺼내어 녹화를 한다. 멀리 있는 애들과 친구들에게 안부 대신 자연의 소리를 들려주면 얼마나 좋아할까.

햇빛사이로 소나무 숲과 굴참나무 숲이 서로 인사를 한다. 숲길은 내가 좋아하는 침엽수 낙엽이 쌓여있어 폭신하기 이를 데가 없다. 아아, 진정 내 다리로 든든하게 땅을 딛고 서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귀중해서 눈물이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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