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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칼럼-세상을 보는 窓_혜범스님(소설가, 원주 송정암 주지)

혜범스님 명사칼럼 '경계에 피는 모든 꽃들'

기자명 이근희
  • 칼럼
  • 입력 2018.08.23 09:34
  • 수정 2018.08.27 14:20
▶혜범스님
▶혜범스님

우리는 늘 경계에 선다. 간혹 우리는 경계(境界)를 한계라 하기도 한다. 때론 경계에 서서 경계를 넘기도 하고 경계에 갇혀 헤어나오지 못하는 지경에 다다르기도 한다.

산다는 일은 어쩌면 그렇게 경계를 서로 나누는 일일 수도 있다. 생과 사, 나와 너, 안과 밖. 만남과 나눔. 그렇다. 주변인, 경계인들은 늘 애틋하고 쓸쓸하다. 문을 열든 문을 닫든 경계에 대한 어떤 결정을 내려도 그 결과는 우리들 몫이기에. 그렇기에 경계는 흐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가.

경계를 무너뜨리지 못하면 뛰어넘지 못한다. 경계에 빠지면 뇌란(腦亂)의 상태에 빠진다. 모호한 경계로 넌 어째 그 지경이냐?”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서있는 위치, 가야할 방향을 놓쳤을 때 쓰는 말이다. 우리는 복잡한 세계의 구조 속에 있기 때문에 관찰이 없으면 성찰은 있을 수 없다.

우리들 삶, 인생이라는 프로젝트는 그렇다. 주의깊게 관찰하지 않으면 늪에 빠지곤 한다. 우리는 그렇게 성찰을 통해 통찰로 간다. 낯섬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한 깨달음 한 깨달음으로 상황과 경계를 인식하는 일. 상호작용 그리고 지식 기술의 습득을 교육, 체험이라 한다.

그렇게 경계를 타개하는 걸 철학적으로는 실천적인 지혜로 메티인지적 인식과정 즉 개인 각자 나름의 사고와 행동을 확장 삶을 누리는 것으로 본다. 어떻게 세계를 인식하고 어떻게 세계를 사는가에 대한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성인이 되면 경계에 유연해진다. 열고 닫음이 자유로와지는 것이다. 그 이유는 경계대상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디에 서있는가. 누구와 어디를 가는가. 나뿐만이 아니라 가족도 이웃도 세계도 이롭게 할 수 있는 방향을 선택한다. 그러므로 경계를 경지(境地)라고도 쓴다.

물론, 하루 10미터를 가는 지렁이의 경계가 있고 하늘을 나는 참새는 참새의 경계가 있다. 세계는 다 다르다. 그러나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우리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에서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라는 경계를 열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산이 산인줄 알았더니 산이 아니요, 물이 물인줄 알았더니 물이 아니라는 것은 각성, 통찰이 되는 것이다. 물론 언어도단이고 불립문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걸 뛰어 넘어야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우물 밖의 개구리가 되는 것이다.

천하에 지극한 즐거움이 있는가? 없는가? 내 몸을 살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없는가? 이제 무엇을 하고 무엇을 그만두어야 하며, 무엇을 피하고 무엇에 머물며, 무엇을 위해 나아가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마침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해야 하는가?”라는 장자 외편의 비유는 우리가 경계에 피는 꽃들을 유심히 볼 수 있는 통찰의 눈을 갖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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