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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미[소설가, 대일문인협회 회장]

김해미(소설가) 명사칼럼/스타트뉴스-세상을 보는 窓

  • 칼럼
  • 입력 2018.08.02 17:48
김해미(소설가)
                    김해미(소설가)

[니체의 명구(名句)로 결혼 서약을 대신하다]

이른 여름날 저녁이지만 초가을날씨처럼 바람까지 살랑살랑 불어댔다. 세팅이 끝난 식탁 위엔 양란 꽃과 열대식물 특유의 넓은 잎이 유리화병에 꽂혀있고, 그 아래엔 파인애플과 초록 잎사귀가 자연스럽게 놓여 있어 마치 이국땅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사회자가 개식선언에 이어 신랑 부모의 입장을 알렸다. 핑크로 한껏 단장한 사돈 부부가 앞장서고 그 뒤를 그린으로 꾸민 우리 부부가 따라 입장하여, 플라워 월 장식 앞에 나란히 서서 하객에게 인사를 했다.

곧 핑크와 꽃무늬 원피스를 곱게 입은 화동이 제 키만 한 꽃목걸이를 목에 걸고 나왔다. 그 애들이 바구니에서 장미꽃잎을 꺼내 풀풀 뿌리니 금세 꽃길이 생겼다. 신부의 절친 친구 두 명의 딸이다. 새로 생긴 꽃길을 밟고 환한 미소를 띤 신랑이 따라 들어왔다.

난생처음 초록색 나비넥타이를 맨 남편과 웨딩드레스에 핑크 하이힐을 신은 신부의 입장. 어려운 임무수행을 무사히 마친 남편은 조심스럽게 신랑에게 딸애를 넘겨주고 내 곁에 앉았다.

드디어 신랑신부의 결혼서약 시간. 초대의 글에 이미 니체의 명구를 빌어 <모든 것의 시작은 위험하지만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시작되지 않는다.>고 썼던 그들은, 결혼서약도 니체의 글귀를 둘이서 나눠 읽는 것으로 대신했다.

신랑: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가/ 행위는 약속할 수 있다. 그러나 감각은 약속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감각은 의지의 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원히 사랑한다는 약속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랑은 감각만이 아니다. 사랑의 본질은 사랑한다는 행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중에서)

신부: 있는 그대로의 그를 사랑하라/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삶을 사는 사람을 그 상태 그대로, 자신과는 반대의 감성을 가진 그 감성 그대로 기뻐하는 것이다. 사랑을 이용하여 두 사람의 차이를 메우거나 어느 한쪽을 움츠러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 모두 있는 그대로 기뻐하는 것이 사랑이다. (방랑자와 그 그림자 중에서)

마침내 신랑신부는, 연애 시작 10년 만에 결혼한 신랑친구 커플에게서 결혼반지를 전달받아 서로의 손가락에 끼워줌으로 영원히 하나로 묶여졌다.

마지막으로 세익스피어의 시 한 구절로 축하를 마치려 합니다. 장밋빛 입술과 뺨은 세월에 희생되어도/ 사랑은 세월의 놀림감이 아니며/ 사랑은 짧은 세월에 변하지 않고/ 최후의 심판 날까지 견디어 나가리라/ 만약 누군가가 이것이 틀렸다고 증명할 수 있다면/ 나는 더 이상 시를 쓰지도 사랑을 하지도 않으리라. “

바깥사돈의 축사를 듣던 어느 한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 뺨을 타고 흐르더니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내 손엔 달랑 핸드폰 하나만 들려 있을 뿐인데,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생각하다 못해 식탁에 있는 냅킨으로 눈물을 닦았는데 색깔이 너무 진한 탓인지 안사돈에게 그만 들켜버렸다. 어느 결에 다가온 안사돈이, “눈물은 전염되어요, 진정하세요,” 다독인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으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파티처럼 결혼식을 하고 싶다고 그렇게나 노래한 딸애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고 웬 주책인지.

그런 중에 베일에 가려졌던 축가순서가 되었다. 갑자기 신랑이 뚜벅뚜벅 무대를 향해 걸어 나갔다. 놀란 신부가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사이에 신랑은 전자 오르간 앞에 앉더니 지난 몇 달 동안 연습했다는 곡을 치기 시작했다. 너무 긴장한 탓인지 중간에 자꾸만 괴음이 삐져나와 하객사이에 웃음이 터졌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신랑은 굳건하게 오르간을 연주했다. “다른 건 필요 없어, 너만 내 곁에 있으면. Rather be.” 비로소 내 눈물보도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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