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스타트뉴스 이철휘 기자] 중부권의 대표일간지 대전일보, 신춘문예 출신으로 구성된 대일문인협회 심사위원회(위원장 김해미)가 제20회 대전일보문학상 수상자로 정장화 소설가를 선정했다고 지난달 30일 밝혔다.대전일보 문학상은 96년부터 제정하여 해마다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한 작가 중에서 5년동안 신작을 펴내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가에게 주어지는 영예로운 상이다.올해로 26년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 7명의 해당 작가가 없어 수상자를 내지 못하고 20명을 배출했다.이들 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금방 알 수 있는 한국 문단을
[대전=스타트뉴스 이철휘 기자] “이 세상의 고통은 어디서 오는가” 그 답은 한 스님의 기구한 삶을 통해 깨닫게 되는 구도(求道)소설 ‘반야심경’에서 찾을 수있다‘소설 반야심경’은 불경 「반야심경」을 소설로 엮은 인간 존재의 근원과 그 초월에 관계된 장편 구도(求道)소설이다. 한 스님의 이야기를 통해 반야심경이 주는 삶의 심오한 의미를 깨닫게 되는 작품이다.누구나 한 번은 겪을 수 있는 평범하지 않은 일상 밖의 고통과 방황을 통해 내가 나를 찾아가는 세상 고해 속의 항해 일지다. 오랫동안 불교에 정진해 온 그는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봄비가 내린다. 꽃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봄날은 가요, 내리는 꽃비들이 내게 말한다. 나와 세상은 둘이 아니에요, 한다. 가만히 꽃 잎 떨어진 자리를 보니 그 몸을 포갠 것들도 있지만 다 각각 자리가 다르다. 가지에 남은 꽃들이 함박웃음 짓는다.괴로움을 떠나 어찌 즐거움을 얻을 것이며 번뇌를 떠나 어찌 행복을 얻을 수 있겠는가. 괴로움이 없으면 즐거움도 없다. 우리들의 이정표는 거리와 방향만을 표시할 뿐이다. 플랫폼에 선 우리가 이정표대로 갈 것인지 말 것인지는 우리들의 선택이다.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방향이 문제다. 진정한 행복은
살다보면 존재의 가벼움으로 생(生)이 막 가려울 때가 있다. 그렇다. 산이 좋아 산에 살다보니 산을 보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럴 때, 나는 산을 오른다. 산을 오르다 보면 숲은 보이지 않는다. 숲을 이루는 건 나무다. 산에 산다지만 산 밑과 무관히 살 수 없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언제나 산은 울창한 숲으로 그 품을 내어주곤 한다.산을 오르다 보면 산이 하고 묻는다. 마치, . 산을 다시 오르려면 생전 어머니가 묻곤 하던 질문이었다. 무념무상이던 나는 걸음을 멈추고 물음을 던지는
저는 저의 봄을 기다릴래요. 사랑이고, 이별이고, 기쁨이고, 슬픔이고, 그리움인 꽃을 피우려면 이 정도 추위쯤은 참아줘야지요. 저 살아있어요. 겨울 꽃나무들이 아름다운 봄을 만들기 위해 기지개를 편다. 모진 바람 눈비 맞으며 울컥울컥 꽃망울을 머금고 서있다.외로워야 저희는 더 화려해져요. 이제 우린 꽃피울 준비를 하고 있어요. 바람에 떨면서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쓰러지지 않은 꽃나무들이 바람 앞에 서있다. 움츠리고 떠는 꽃나무들의 삶의 태도가 너무 예쁘다. 모진 추위와 바람에 알몸으로 서있는 꽃나무들. 어쩌다 첩첩산골 비포장 흙길
우리는 늘 경계에 선다. 간혹 우리는 경계(境界)를 한계라 하기도 한다. 때론 경계에 서서 경계를 넘기도 하고 경계에 갇혀 헤어나오지 못하는 지경에 다다르기도 한다.산다는 일은 어쩌면 그렇게 경계를 서로 나누는 일일 수도 있다. 생과 사, 나와 너, 안과 밖. 만남과 나눔. 그렇다. 주변인, 경계인들은 늘 애틋하고 쓸쓸하다. 문을 열든 문을 닫든 경계에 대한 어떤 결정을 내려도 그 결과는 우리들 몫이기에. 그렇기에 경계는 흐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가.경계를 무너뜨리지 못하면 뛰어넘지 못한다. 경계에 빠지면 뇌란(
[산이 좋아 산에서 산다]사람들은 그리우면 산을 찾는다. 쓸쓸한 날이면 우리는 산에 오른다. 그렇게 산이 되는 것이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 산을 내려가는 사람들. 산에 든 사람들은 산을 내려간다. 산을 내려가지 않은 이는 길의 끝에 머문 사람들이다. 죽은 사람들이거나 나같이 산에 사는 스님 아님 산인들일 것이다. 저자거리가 좋은가. 산이 좋은가. 바다가 좋은가? 아무덴들 어떠랴.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그렇게 만만치 않다. 산에는 산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저자거리는 저자거리대로 사연이 있다. 떠나기 위해 머무는 이는 없다. 머물고 살기
[마음의 문 삶의 창]문은 문자 그대로 안과 밖을 연결해주는 통로이다. 밀실과 광장, 빛과 어둠 꿈을 가져다주는 우리들의 세계를 결정한다. 무문, 무문관이란 원래 문이 없다, 삶은 수행이다, 에서 출발한다. 모든 건 벽이다, 라는 가설이다. 문이 없다, 라는. 벽은 문이라는 가정. 어떤 문을 여는가, 어떤 세상을 갖는가는 각자의 선택이다. 내부와 외부, 우리는 내부에 있지만 외부로 나아가고 다시 내부로 돌아온다. 그렇게 우리는 내부와 외부세계를 드나들거나 물건, 생각을 넣었다 꺼냈다 하기 위하여 열고 닫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