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스타트뉴스TV=유효비 기자] 김해시 드림스타트는 지난 23일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에서 초등 2~5학년 아동과 양육자 31명이 참여한 가운데 ‘클레이아크 탐방’ 행사를 개최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번 행사는 건축과 도자를 접목한 ‘모자이크 타일 액자 만들기’ 프로그램과 전시, 성악공연을 동시에 관람할수 있는 ‘성악가 도슨트가 들려주는 음악과 전시 이야기’로 진행됐다. 풍부한 감성과 오감을 길러주고 가족관계 개선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한 아동은 “평소에 미술관에 가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 체험할 수 있어 좋았고 성악가에게
[대전=스타트뉴스 이철휘 기자] 중부권의 대표일간지 대전일보, 신춘문예 출신으로 구성된 대일문인협회 심사위원회(위원장 김해미)가 제20회 대전일보문학상 수상자로 정장화 소설가를 선정했다고 지난달 30일 밝혔다.대전일보 문학상은 96년부터 제정하여 해마다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한 작가 중에서 5년동안 신작을 펴내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가에게 주어지는 영예로운 상이다.올해로 26년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 7명의 해당 작가가 없어 수상자를 내지 못하고 20명을 배출했다.이들 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금방 알 수 있는 한국 문단을
[대전=스타트뉴스 이철휘 기자] 2021년 겨울, 첫눈 소식과 함께 김해미 작가는 2016년 첫 소설집 ‘좋은 그림 찾기’에 이어 만 5년 만에 두 번째 소설집 ‘십자가 살인사건’을 세상에 내놓았다.그녀는 소설집을 낼 때마다 미술 작품들이 양념으로 등장하여 독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다.첫 소설집 ‘좋은 그림 찾기’에도 여덟 명의 화가와 함께 등장하더니 이번에는 뉴욕에서 작품활동을 왕성하게 펼치고 있는 오빠 김여성 재미화가의 작품들도 함께 선보였다.이렇게 작품을 낼 때마다 그림이 쫓아다니는 것은 아마도 그녀가 대학에서
모처럼 남편과 고향인 청양에 다니러 갔다. 몇 해 전부터 둘째시숙 혼자 지키고 있는 고향집이다. 한때는 부근의 산과 토지 대부분이 시댁 소유였으나 두 분 떠난 지금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나마 올해는 소작하던 이들이 마다해서 묵는 땅이 적지 않다. 이미 장년이 된 시숙도 힘에 부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농사를 짓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고향집 입구에서 제일 먼저 우리를 반기는 것은 초록색 양철대문. 뒷산으로 오르는 작은 언덕 위 보리수 열매는 제 철을 만나 새빨갛게 익었다. 시큼 달콤 떨떠름한 맛을 고루 지닌 그것은 청을
곧 우리 부부는 결혼 40주년 기념일을 맞는다. 오랜 시간 참고, 잘 살아왔다. 이날은 특별히 맛난 안주를 장만하여 술 한 잔을 나누면서 그동안 함께해준 남편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말을 하고 싶다. 한때는 기념일마다 애들과 함께 날 잡아 여행을 간다거나 보고 싶은 영화를 함께 보는 등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둘의 취향이 워낙 다르다 보니 번번이 어려움이 많았다. 유독 한식만 찾는 남편은, 음악도 판소리와 국악 등 우리 음악을 더 좋아하며, 옛날 농촌 풍경이 나오는 극히 제한된 소재의 한국영화만 본다. 반면에 여행을 좋
대전시와 대전문화재단이 2017년 신설한 ‘향토예술인창작지원금’을 몇몇 원로문학인들이 부정수급한 일이 생겼다. 23명의 해당 문인들 중 7명이 2017년과 2018년 연속으로 지원금을 받은 후 개인 작품집을 발간하면서 거의 표지만 바꾸거나 전작에서 발췌하여 발간을 한 것이다.보도에 의하면 시조시인 J씨는 91편 중 90편이 동일했고, 소설가 K씨는 3편의 단편소설 중 2편을 제목만 바꿔 그대로 실었으며, 수필가 A씨는 74쪽 분량을, 시인 B씨는 추려서, 동시인 C씨는 전체분량의 25%를 재수록 했다 한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것은
고교시절 문학 동아리에서 함께 활동했던 윤으로부터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전갈을 받았다. 헤아려보니 42년 만이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몇 차례 전화를 받았고, 가까스로 그의 결혼식에도 참석했지만 대전에 같이 살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살아왔다. 비단 윤 뿐 아니라 참 많은 이들과도 이런저런 이유로 연락 없이 살아왔다. 세상살이가 어찌 맘먹은 대로만 되는 것이던가.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약속장소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160cm가 채 되지 않는 단신의 윤은 넉넉한 몸피와 사람 좋은 웃음으로 손님을
[스타트뉴스=이철휘 기자]2018-2019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는 입주기간동안 작품 성과물을 프로젝트 형식으로 선보이는 아티스트 릴레이 전시를 진행한다. 아티스트 릴레이 전시는 스튜디오 전시장에서 그간 작업했던 결과물에 대한 보고전시로 해마다 작가 자신의 기존의 성향과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감각과 역량을 보여주는 형태로 진행된다. 12기 열한 번째 릴레이 전시로 장용선 작가의〈너의 안식처는 어디인가? Where is your Querencia?〉展,과 최수연 작가의 〈망한 나라의 음악 Music from decaying country
별다른 놀이기구가 없었던 어린 시절, 대전 보문산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큰 놀이터였다. 동네 오빠, 언니들과 어울려 봄부터 가을까지, 나는 선 머슴애처럼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놀았다. 때로 아카시아, 진달래. 찔레꽃은 물론이고, 다래와 산딸기, 까마중을 간식거리로 삼았다. 그러다가 날이 쌀쌀해지고 설날이 가까워지면, 그때그때 부모님들이 자리를 비운 빈 집에 모여들어 연극 연습에 몰두하곤 했다. 우리들 중에 나이가 많은 오빠나 언니가 나름대로 창의력을 발휘해서 만든 극본은, 동화책에서 빌려온 여러 캐릭터들의 짜깁기에 불과했지만 어린 우
귀가길, 학교 앞길 바닥에 떨어져있는 노트 한 권을 보았다. 웬 노트인가 싶어 한 권을 집어 들고 일어서려는데 그 뒤를 이어 또 한 권의 노트가 떨어져있다. 노트를 펴보니 새 노트이다. 그걸 들고 걷다보니 또 한 권의 노트가 눈에 띈다, 이번에는 아예 서너 권이 함께 놓여있다. 그렇게 해서 모두 스무 권의 노트를 주웠다. 근처 학원에서 홍보용으로 학생들에게 나누어 준 모양이었다. 가로나 세로로 줄이 쳐 있는 것도 아니어서 크로키를 한다거나 삽화를 그리거나, 어쨌든 어떻게 사용해도 무난한 다용도 노트였다. 그런데 왜 학생들은 이 노트
친구 중 하나가 고향땅에 제 이름으로 된 집 한 채를 가지게 되었다 해서 우리는 축하를 할 겸 나주에 있다는 그녀의 집으로 갈 계획을 세웠다. 지난 1995년. 문화원의 비디오강좌에서 처음 만난 이후 오늘까지 우리는 매월 한차례 정기모임을 하고 있다. 몇 번은 해체될 위기가 있었지만 용케도 오늘까지 이어온 귀한 친구들이다. 동아리를 결성한 후에는 공동으로 비디오를 몇 편 제작하여 몇 군데 출품하다가 환경부에서 주최하는 전국대회에서 덜컥 대상을 탔다. 신문과 TV에 우리의 활동이 소개되면서 한동안 우리는 모두가 환경운동가라도 되는 양
내게는 세 명의 언니가 있다. 그 중에 유독 유행에 민감한 둘째 언니는 남보다 튀는 옷 입기를 좋아했다. 요즘처럼 물자가 흔하지 않던 시절에 적은 돈으로 멋을 내려면 판도라 상자만큼이나 다양한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구제 가게가 제 격이었다. 그곳에서 눈썰미 있게 찾아낸 개나리 색 원피스를 입은 둘째 언니의 모습은 아직도 내 기억에 선연하다. 함께 외출을 할 때마다 언니에게 쏟아지던 뭍 시선 때문에 내 어깨도 덩달아 으쓱했다. 언니는 동행하는 내게도 그 시절 유행이었던 분홍색 맘보바지를 입혔다. 언니와의 외출은 내게 늘 짜릿한 기쁨을
모처럼 여고 동창모임에 참석하려고 염색을 하는데 남편이 급하게 나를 찾았다. 웬일인가 싶어 “나, 여기 있는데, 왜요?” 말하며 고개를 돌렸는데 그만 갑자기 왼쪽 등짝이 뜨끔했다. 숨을 쉬지 못할 격한 통증이 한차례 지나간 이후 몸이 굳어지는 것 같더니, 갑자기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듯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너무나 삽시간에 일어난 일이라 처음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동네 단골 한의원에 가서야 그것이 ‘담’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후의 며칠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일상의 모든 것이 어려워졌다. 식사
드디어 내게도 사돈이 생겼다.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안사돈은 창원으로 한 번 내려오라고 성화였다. 아이들이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가겠다고 했더니 아이들과 함께 만나는 것은 다음에 하고 우리끼리 오붓하게 만나잔다. 자꾸만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폭염주의보가 내려 전국이 한증막처럼 끓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창원행 새벽기차를 탔다. 당일치기라도 해서 다녀가라는 안사돈의 권유를 따른 것이다. 아무리 날씨가 덥다하지만 아직은 예의를 지켜야 할 것 같아서 민소매 원피스에 보라색 볼레로를 걸치고 편한 구두를 신었다. 남편에게도 준
[니체의 명구(名句)로 결혼 서약을 대신하다]이른 여름날 저녁이지만 초가을날씨처럼 바람까지 살랑살랑 불어댔다. 세팅이 끝난 식탁 위엔 양란 꽃과 열대식물 특유의 넓은 잎이 유리화병에 꽂혀있고, 그 아래엔 파인애플과 초록 잎사귀가 자연스럽게 놓여 있어 마치 이국땅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사회자가 개식선언에 이어 신랑 부모의 입장을 알렸다. 핑크로 한껏 단장한 사돈 부부가 앞장서고 그 뒤를 그린으로 꾸민 우리 부부가 따라 입장하여, 플라워 월 장식 앞에 나란히 서서 하객에게 인사를 했다. 곧 핑크와 꽃무늬 원피스를 곱게 입은 화동이
[드레스 코드가 있는 결혼식]과년한 딸애가 지난 6월, 드디어 시집을 갔다. 창원에 사는 사돈과 여러 번 만나 조율을 한 끝에, 신랑신부의 생활근거지인 서울의 한 야외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치룬 것이다.결혼식 3주전 쯤 식장을 둘러보고, 또 음식 맛을 보기 위해 서울나들이를 하게 되었다.“정말, 한복 안 입을 거예요?”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 하고자 묻는 내게 사돈댁이 웃으면서 대답했다.“그거, 이미 결정된 거 아니었어요? 우리, 평상복을 입어요. 마침 야외예식이니 그게 더 자연스러울 것 같지 않나요?”딱히 반대할 이유는 없었지만,